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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 해결을 위한  농성장  – 어차피 우리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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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 해결을 위한 <반올림> 농성장 – 어차피 우리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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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 해결을 위한 <반올림> 농성장

  • 어차피 우리의 싸움

카메라를 보고 쭈뼛쭈뼛 다가와 “뭐 하는 분이세요?”라고 묻는 삼성 경비요원의 입에서 입김이 쏟아져 나왔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기자요”. 짧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마저도 입이 얼어서 똑바로 말하지 못했다. 보통 어느 언론사인지도 묻고 명함도 한 장 받아가는 게 관례였지만 그는 “네”하고 짧게 내뱉고는 이내 다시 마스크를 쓰며 돌아섰다. 하긴 추워도 너무 추웠다. 21세기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니. 그날의 아침 기온은 영하 17도였다. 이런 날에도 우두커니 서서 천막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이 참 안쓰럽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840. 입구도 알아볼 수 없게 비닐로 둘러싼 천막에는 숫자가 붙어 있다. 팔백서른아홉번의 밤을 길에서 보냈다는 표시. 팔백마흔번의 아침마다 외면받았다는 표시. 농성에 숫자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들 하지만 이만치나 큰 숫자에는 아무래도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적과 13년째 싸우고 있는, 그 ‘바벨탑’ 앞에서 더위도 추위도 상관없이 840일 째 버티고 있는 ‘반올림’의 농성장이다.

# 또 하나의 약속

12년 전,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가 있다. 딸은 국내 최대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 어느날부턴가 딸은 시름시름 앓더니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온갖 화학물질이 범벅된 공장에서 일하다 얻은 병이었다. 딸은 병원에 다녀오는 길, 아빠가 운전하는 택시의 뒷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회사는 돈봉투를 내밀었다. 딸의 목숨값이었다. 회사 잘못을 떠들고 다니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아버지 황상기는 돈봉투 대신 딸 유미와의 약속을 선택했다. 아버지는 노무사 이종란을 만났고, 유미와 같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사람들을 찾았다. 삼성에 책임을 묻고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반올림’의 탄생이다. 그리고 10년.

“유미가 아플 때 약속을 한 게 있어요. 유미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로 했거든요. 그 약속을 지키려고 오래동안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약속은 지켜진 셈이다. 2007년 사망 이후 황상기와 반올림의 노력 끝에 법원은 2014년에 황유미의 백혈병이 산업재해가 맞다고 판결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상고를 포기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의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보상도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 황상기와 반올림은 거리에 있다.

“처음에는 유미의 억울함, 또 저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작을 하고보니 너무나 많은 환자들이 반올림에 제보를 해오거든요.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 유미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 사람들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다 병에 걸렸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도 유미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인 거죠.”

# 원점

사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사태는 해결 국면으로 들어서는 것처럼 보였다. 반올림은 2015년 7월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발병과 관련한 문제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가 내놓은 권고안을 큰 틀에서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조정위는 ‘공익 법인’을 설립해 직업병 피해에 대한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총괄하도록 하고 그에 따른 비용 1000억 원을 삼성이 부담하라고 권고했다. 문제는 삼성이 이 권고안을 마뜩잖아한 데서 발생했다. 권고안이 나오자 조정위 권고안에 무조건 따르겠다던 삼성이 입장을 돌연 선회했다. 삼성은 조정위 권고안이 나온 지 한 달여 만에 자체적인 보상위원회를 구성했고 이 보상위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직접’ 보상을 하겠다고 나섰다. 삼성은 자신들이 직접 피해신고를 접수받고 직접 그 사실여부를 판단해서 직접 보상한다. 가해자가 직접 피해보상 대상자와 피해보상 규모를 선별하고 있는 셈이다.

반올림이 삼성전자 본관 앞에 농성장을 차린 건 2015년 10월 7일, 삼성 측과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가 조정위에 ‘조정 보류’를 요청한 직후다.

애초에 조정위를 통한 사태 해결은 삼성이 제안했다. 삼성과 반올림의 입장 차이로 직업병 피해 보상에 대한 교섭이 지연되고 있다며 제3자의 중재로 교섭을 진척하겠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권고안이 나오자 말을 뒤집었다. 삼성의 보상위원회는 직업병 피해 가족들을 찾아다니며 ‘함구’를 조건으로 돈 봉투를 내밀었다. 10년 전 황유미 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사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 왜 아직도 이러고 있나

어쩌면 그때보다 상황은 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2014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계기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직업병에 걸린 피해 노동자들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공론화 됐다.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이사는 물론 총수 일가인 이재용 부회장도 문제 해결의 의지를 천명했다. 2016년엔 광장에 촛불이 일었고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져나갔다.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노동존중’과 ‘안전사회’를 표방하는 새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의 대통령은 삼성전자직업병 피해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약했다. 세상은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해결’을 입에 올렸다.

“촛불을 들면서 결국엔 박근혜, 이재용이 구속이 되는 상황이 되고. 저희도 많은 희망을 품었거든요. 실제로 바뀔 수 있겠다, 우리 문제도 조속히 해결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었는데, 여전히 크게 변함이 없었어요. 특히 삼성은 더 변함이 없었고요.” (이종란 노무사 / 반올림 활동가)

“많은 사람이 이재용도 대통령도 약속을 했는데 이 문제가 지금까지 왜 해결이 안 됐냐고 되물어보는 사람도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삼성과 반올림은 여전히 아무런 대화나 면담도 없어요. 그걸 주선하거나 중재하겠다고 나서는 정치인도 없고요. 답답할 노릇이죠.” (황상기)

모두의 ‘말’은 그럴 듯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지독한 외면. 그 사이 피해자들은 늘어갔다. 2005년 황유미 한 명으로 시작된 반올림은 지난 10여년간 직업병 피해자 320여명의 제보가 이어졌고 그 중 118명이 사망했다. 이재용은 감옥에 있고 삼성이 보상을 시작했다는 언론 보도는 연일 이어졌다. 사람들은 관심을 수이 거두어갔다. “왜 아직도 이러고 있느냐”란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답답할 노릇이다.

# “어차피 우리가 하던 싸움이었어요.”

팔백마흔번째 밤, 농성장 천막 안에선 ‘이어말하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날의 이어말하기는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의 윤가브리엘 씨가 진행했다. 이어말하기는 2015년 9월부터 꾸준히 진행되는 반올림 농성장의 ‘대표 브랜드’다. 농성장을 찾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자기의 이야기, 직업병 피해의 이야기, 노동과 인권과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3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말하기의 ‘이어짐’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적은 날도,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도. 사실 이 ‘이어짐’이야말로 반올림 투쟁의 상징이다.

“상황이 달라지면서 기대를 많이 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지금은 다시 정신을 차렸죠. 어차피 외부환경에 굴하지 않고 우리가 꾸준히 이어온 싸움이니까요. 기대했던만큼 실망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정신차리고 다시 또 힘 모아서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더 제대로 비판하고 문제를 알려내고요.” (이종란)

“유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반올림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었어요.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임기까지 다 지나보내고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잖아요. 그게 어쨌건 달랐던 건 없어요. 하지만 처음엔 화학약품 같은 건 쓰지도 않는다고 했던 삼성을 상대로 조금씩이나마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잖아요.” (황상기)

2007년 3월 6일. 황유미가 세상을 떠났다. 두 달후인 2018년 3월이면 11주기다. 황상기는 거리에 있고, 잠시의 인연일 줄 알았던 이종란도 여전히 황상기와 함께 있다. 그들은 삼성이 쌓아놓은 강남 한복판의 바벨탑 앞에서 삭풍을 맞으면서, 팔백 마흔 한번째 외면받는 아침을 맞이한다. 힘 있고 목소리 큰 이들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힘 있고 목소리 큰 이들의 목소리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이어서 말하고 있다. 여전히 그곳에서.   

성지훈 기자 lumpenace02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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