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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고공농성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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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고공농성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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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이다. 눈과 비가 뒤섞인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건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한 목숨줄이다. 75미터 굴뚝과 연결된 단 한 줄에는 밥이 매달린다. 밥줄을 지키는 일, 그들이 하는 일은 어쩌면 단지 그것이다. 공장과 농성장 사이, 하늘과 땅 사이는 사뭇 멀지만 실은 단지 밥줄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굴뚝으로 오를 밥을 챙기는 차광호의 손은 능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고공농성을 한 남자다. 하늘의 삶이 어떤지 가장 잘 아는 사람. 2014년 스타케미칼 노동자 차광호는 구미 공장의 45미터 굴뚝에 올랐다. 스타케미칼 사측이 회사 청산을 결정하고 공장에서 철수한 다음 날이었다. 차광호는 408일을 하늘에 매달려 싸운 뒤 사측으로부터 고용과 노동조합, 단체협약을 승계 (3승계)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내려왔다. 408일 동안 차광호의 밥줄을 함께 지킨 건 홍기탁과 박준호를 비롯한 10명의 동료였다.

차광호가 땅을 밟고 2년 4개월, 파인텍의 노동자 홍기탁과 박준호가 목동 열병합 발전소의 75미터 굴뚝에 올랐다. 차광호가 땅을 밟으며 약속했던 3승계가 2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은 때문이다. 그들이 오른 굴뚝은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 김세권 회장의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하늘이다. 이번엔 차광호가 그들의 밥줄을 지키고 있다. 2년 4개월이 지나 다시 오른 굴뚝은 30미터나 더 높아졌고, 옆을 지키는 동지들도 줄어들었다. 회사 이름도 바뀌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이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래서 그들은 고공농성 날짜를 새로 헤아리지 않는다. 408 + @, 그 때나 지금이나 그저 ‘계속’ 밥줄을 지키는 일.

#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회사는 3승계의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2016년 1월, 스타케미칼의 모회사인 스타플렉스는 충남 아산에서 타폴린을 생산하는 파인텍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스타케미칼의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11명 중 8명이 아산으로 향했다. (고향인 구미를 떠날 수 없었던 3명은 ‘아산행’을 포기했다.) 아산의 공장은 사실상 폐건물이나 다름없었다. “산속에 위치한 공장건물엔 불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기숙사라고 주어진 건 공장 옆에 붙여놓은 작은 가건물이었다. 회사는 식사제공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공장을 보자마자 또 한 명이 떠났다. “공장을 보는 순간 더 지독한 싸움이 있을 걸 알았어요. 더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사람들이 떠났죠. 생계가 걸린 문제니까요.” (조정기)

공장에서 일하는데 ‘생계가 문제’라는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2015년 노사의 합의에 따르면 임금은 최저임금 + 1천 원이었다. “야근이나 잔업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어요. 심지어 개성공단이 폐쇄됐을 때는 공단 폐쇄로 일감이 폭증했는데도 일을 시키지 않았어요. 회사가 공장을 돌려서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차광호) 차광호가 아산 공장에서 일한 10개월 동안 받은 임금은 1천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고용 승계가 아니라 ‘유배’라고 표현했다. “해고하지 않으면서 공장에 가둬놓고 알아서 나가라는 것” 고립시키고 지쳐서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린 것일까.

2016년 1월에 완료하기로 했던 단협도 체결되지 않았다. 2016년 4월까지 18차례 교섭을 했지만 접점을 찾을 순 없었다. 노조활동과 복지를 둘러싼 이견이 컸다. 2016년 10월, 결국 다시 파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 공장에서 기계를 꺼내 갔다. 그사이 건물 임대계약도 끝났다. 회사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파인텍이 있던 공장엔 새로운 사업체가 들어섰다. 파인텍의 노동자들은 결국 굴뚝으로, 서울로 와야 했다. 그것 말고는 “갈 수 있는 데가 없었다”(차광호)

 


# 유배

스타플렉스는 도대체 왜 공장을 멈추고 싶어 한 것일까. 파인텍 노동자들은 ‘먹튀’를 이야기 했다. 스타플렉스는 2010년, 고용 승계를 약속하고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만드는 스타케미칼을 399억 원에 인수했다. 그 뒤 회사는 변변한 영업활동 없이 설비와 공장 터의 분리매각을 추진했다. 스타플렉스 사측은 “회사가 인수한 뒤 초기 가동을 위해 200억 원 가량을 투입하고 2년 정도 영업을 하며 350억 원 적자가 나는 등 550억 원 이상을 추가 투입했기 때문에 먹튀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한국합섬이 파산하고 재산관리를 하면서 890억 원 상당의 가치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부지의 부동산 값만 해도 큰 액수였죠. 스타플렉스는 들어오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했던 것 같아요. 생산해서 이익이 나면 그대로 공장을 가동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팔아서 차익을 남기거나. 결국 후자를 선택하면서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우릴 유배 보내게 된 거죠.” (차광호)

# 밥줄을 잇다

하늘로 오른 이들은 ‘3승계 합의 이행’과 ‘노동악법 폐기’, ‘헬조선 해체’라는 구호를 걸고 있다. 너무 거창한 것 아닌가. 벌써 수년을 싸운 ‘우리 공장’의 이야기도 벅찬데 노동악법이라니, 헬조선 이라니. 더구나 새로 들어선 정부는 지난 정권과 달리 촛불혁명이 만들어낸 ‘민주진보’ 정권인데.

지난 촛불의 성과는 정권을 바꿨다. 그리고 ‘노동을 존중’한다는 새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은 당장 오늘의 밥줄이 위태로운 노동자들의 투쟁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지난 정권에는 찍소리도 못하다 촛불혁명에 무임승차하려는 노동귀족”이란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나중에’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진보 정권의 도움을 ‘기다리라’는 주문.

“한국합섬이 파산하고 5년을 싸웠어요. 스타플렉스가 들어오고선 3년을 또 싸웠죠. 고공농성을 408일 했고요. 그런데 달라지는 게 없었습니다. 정권이 아니라 세상의 제도가 이미 틀어져 있고 상황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정리해고가 허용되는 노동악법의 직접 피해자였잖아요. 그런 것들을 놔두고 싸우면 결국 제자리걸음일 뿐이라는 걸 알았어요.” (차광호)

아사히글라스, 하이텍알씨디, 반올림, 콜트-콜텍, 전주의 택시노동자, 그리고 일일이 열거하기엔 너무 많은 투쟁하는 노동자들. 정권이 달라져도, 대통령의 이름이 바뀌어도 여전히 싸울 수밖에 없는 이들, 밥줄을 지키기 위해 하늘로 오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아직도 곳곳에 있다. 그게 ‘고작’ 대통령의 문제일까. 바꿔야 할 게 그저 대통령의 이름뿐일까. 기다리면 해결될 일일까. 72일, 그보단 408일을 더해 480일을 싸우는 동안 굴뚝은 30미터 더 높아졌고, 동지는 줄었고, 세상은 더 각박해졌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 힘들어졌고, 한계는 더 명확해졌다. 그렇지만 파인텍의 노동자들은 고작 사장 이름에 욕지기를 뱉어내는 대신에 더 거대한 싸움을 시작했다. 이들은 그게 밥줄을 지켜내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조직된 노동자들이 투쟁하지 않으면 현실은 절대 바뀌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한계는 있을 겁니다만 그동안 다른 모든 투쟁들도 그렇게 해왔어요. 긴 세월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실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가 직접 열심히 힘내서 투쟁할 수밖에 없는 거죠.” (박준호)

헬조선 해체라니, 노동악법 폐기라니, 재벌개혁이라니. 이 거창한 구호들에서도 그들이 하는 일이란 그저 ‘밥줄’을 지키는 일이다. 하늘에서 간신히 붙들어 잡고 있는 밥줄,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밥줄, 구미와 전주와 광화문과 목동의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잇는 밥줄.
농성장을 찾은 날,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의 기자회견과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농성장을 다녀온 차광호를 만나기 위해 30분이 넘게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어쩌면 노동자들의 ‘밥줄’을 잇는 차광호의 능숙한 손.

 

성지훈 lumpenace02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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