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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인 ‘길들이기’…’그루밍’ 관련 전문가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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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인 ‘길들이기’…’그루밍’ 관련 전문가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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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여중생이 출산을 했다. ‘연예인 시켜주겠다’며 접근한 40대 연예기획사 대표 A씨의 상습적인 성폭행이 낳은 결과였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2심에서 각각 12년형, 9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결국 무죄를 선고 받았다. 대법원이 피해자가 A씨에게 보낸 편지 등을 근거로 이들의 관계를 ‘사랑’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재상고로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앞두고 있는 이 사건은 ‘성적인 길들이기’, 이른바 ‘그루밍(grooming)’ 수법에 의한 성폭력으로 분류된다. 주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서 나타나는 ‘그루밍’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존하게끔 길들임으로써 성을 착취하고 폭로를 막는 행위를 의미한다. 아동·청소년 보호단체 사단법인 탁틴내일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 6월까지의 성폭력 상담사례(78건) 중 ‘그루밍’ 피해가 43.9%(34건)에 달했다.

아동·청소년 보호단체 관계자와 법조계 인사들은 7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 모여 그루밍 문제의 피해와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탁틴내일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배승민 가천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임수희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 박은정 서울동부지방검찰청 부장검사, 박미혜 서울시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경감 등이 참석했다.

김미랑 탁틴내일연구소 소장은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사랑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 나에게 그 사랑과 인정을 준다”고 믿게 되는 것이 그루밍 피해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친부가 ‘다른 아빠들도 이렇게 한다’고 속이거나 어릴 때부터 성적 행동에 익숙하게 하는 경우 또는 SNS에서 만난 가해자가 애정표현을 한 뒤 지속적으로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성을 착취하는 식이다. 가해자의 길들임 속에서 “성폭력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고 김 소장은 설명한다.

그루밍 피해는 기타 성폭력에 비해 피해가 장기화되는 특성도 있다. 탁틴내일연구소의 피해사례 분석 결과 전체 성폭력 피해자 그룹의 1회 이상 피해 사례가 48.7%인 데 반해 그루밍 그룹은 67.7%로 나타났다. 배승민 가천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뇌발달 시기의 아동이 그루밍 피해에 노출됐을 경우 “’성적 접촉’ 외에 대인관계가 있다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되며 “장기적인 후유증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관련 판례들을 분석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는 “즉각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가 선고되는 판결이 아직도 나온다”며 피해자의 ‘주관적 공포’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가)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는 외형상 자발적 성관계로 보이는 사건이 있더라도 피해자의 연령이나 당시 두려움에 공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예기획사 대표 사건’의 피해자 역시 초반에는 순응적 태도를 보였지만 진술 과정에서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콩가루 집안으로 소문날 것 아니냐’, ‘왕따가 될 수 있다’는 등의 공포감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론에 참석한 사법 당국 관계자들도 이러한 지적에 공감했다. 박은정 서울동부지방검찰청 부장검사는 연예기획사 대표 사건을 기소하고 재상고하는 과정에서 담당 검사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며, 앞으로 전문적인 관심을 가진 판사와 검사, 수사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수희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의 경우 미국 연방 형법의 그루밍 관련 법률에 대해 설명하며 한국의 성폭력 관련 법률이 강화돼야 한다는 데 입장을 같이 했다.

노지민 기자 nohkija@gmail.com

관련 영상: http://news.kukmin.tv/archives/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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