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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15화] 박정희 그리고 긴조세대 III. 부마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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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암흑적인 정치, 살인 정치를 감행한 이 정권은
피를 보고 머지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시절,
유신정권에 대해 한 말입니다.

그리고 곧 이 말은 현실이 됩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유신체제는 1979년 끝이 납니다.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그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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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조세대를 애도하는 마지막 시간으로,
이번에는 유신체제의 마지막 서막을 알린 ‘부산마산항쟁’,
‘부마항쟁’입니다.

 

1. 김영삼 의원직 제명

부마항쟁은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에서 촉발됩니다.

유신체제가 계속되던 1979년 9월 16일,
<뉴욕타임스>에
“미국이 독재정권을 지원하면 안 된다”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인터뷰가 실립니다.

이에 당시 여당인 공화당과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김 총재에 대한 징계를 요청하고,
헌정을 부정한 사대주의적 발언이라며 강력히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요청한 징계는
바로 ‘의원제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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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의정 사상 최초로
현직 국회의원이 제명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10월 4일, 백두진 당시 국회의장이
야당의원들에게는 알리지도 않은 채,
징계동의안을 구두로 법사위에 회부해 통과시킵니다.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날치기’ 통과입니다.

그 이후의 본회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야당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지키고 있자,
평소 여당의원 의총 장소였던
의사당 내 146호실로 본회의장을 바꿉니다.

그리고 경호권을 발동해 야당의원들의 진입을 막은 후,
제명결의안을 변칙으로 통과시킵니다.

당시 모습입니다.
참석한 159명 전원 만장일치였습니다.

이에 제명당한 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결국, 민주주의가 회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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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민당 소속 의원 전원은 무기한 등원거부를 결정하고,
같은 달 13일, 야당의원 전원이 집단사퇴서를 제출합니다.

이 사태는 사흘 뒤인 16일 보도로, 더 악화됩니다.

공화당과 유정회 합동조정회의에서,
사퇴서를 일괄 수리나 선별 처리한 후
보궐 선거를 실시하자고 논의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명된 의원과 사퇴서가 수리된 의원 모두,
보궐 선거는 물론이고
다음 총선에도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 논의까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고
이는 ‘부산마산항쟁’으로 이어집니다.

 

2. 부마항쟁

10월 15일, 부산대학교에서
‘독재타도, 유신철폐’를 골자로 한 ‘민주선언문’이 배포됩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모이지 않자,
‘민주투쟁선언문’이 다시 교내에 뿌려집니다.

당시 배포된 선언문입니다.

결국, 이날 시위는 끝내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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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음 날은 달랐습니다.
부산대생들의 교내시위가 순식간에 4천여 명으로 늘어납니다.

거리로 나온 부산대생들에 이어,
동아대생들과 시민들이 합류해
시위대의 규모는 점점 늘어 시민항쟁으로 발전합니다.

다음 날인 17일에도 시위는 계속됩니다.

파출소, 경찰서, 도청, 방송국 등에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하게 이어집니다.

이에 당시 정권은 부산대에 휴교조치를 내리고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일대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합니다.

18일자 경향신문 1면입니다.

“부산에 비상계엄 선포”, “불순분자의 망동 발본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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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당시 신문은
시민들을 ‘불순분자’라고 왜곡해 보도합니다.

이러한 조치에도, 시위는 마산과 창원으로 확대됩니다.

경남대생들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합세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시위 양상은 부산보다 오히려 더 격화됩니다.

이에 정권은 20일 0시를 기해
마산·창원 일대대에 위수령을 발동합니다.

 

3. 10.26사태

결국, 시위는 단시일에 진압됩니다.

하지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왔습니다.

같은 달 26일, 민심 이반 현상을 놓고 언쟁을 벌이던 중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권총으로 살해해, 유신정권은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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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입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28일 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살인과 내란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같은해 5월 24일, 서울구치소에서 형을 집행받습니다.

 

총 3차례에 걸쳐 긴조세대를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단 몇 분이라는 찰나에
그들의 피 흘린 투쟁의 역사를 말한다는 것이
부끄럽고 고맙고 죄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몇 십 년, 아직 반 세기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습니다.

그분들을 기리고자,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접근해도
가벼이 내뱉는 말밖에 되지 않을까 싶어
말 한 마디가 조심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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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기에, 그 소중한 권리이기에
더 치열하게 누리고자 합니다.
더 철저하게 누려야겠습니다.

그분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남기겠습니다.

이것이 <그날들>을 만드는 하나의 이유입니다.

<그날들> 장부경입니다.

 

※ The아이엠피터는 매주 수목금 저녁에 공개됩니다.

* 수요일 – 아이엠피터 초대석 + 추적10분
* 목요일 – 김기자가간다+쿠포터+그날들
* 금요일 – 종합본

더 낮은 곳, 더 소외된 곳, 더 정치적인 곳을 찾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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