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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14화] 박정희 그리고 ‘긴조세대’ II. ‘3.1민주구국선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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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3 1 있었던 일명, 명동사건.

이에 대한 서정각 당시 서울지검장의 발표 모습입니다.

이처럼 당시 유신정권은 ‘3.1민주구국선언 사건
일부 재야인사들의 정부 전복 선동사건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관련자들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하고,
또 하나의 긴조세대를 만듭니다.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그날들>.
긴급조치로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넋을 기리며,
당시의 대표적인 시국사건들에 집중합니다.

이번에는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유신 반대운동을 확산시킨 ‘3.1민주구국선언 사건입니다.

1. 1976년 3 1

1976 3 1 저녁 6 명동성당에서
‘3.1절 기념신교와 구교의 대규모 합동 미사가 열립니다.

그리고 기도회 마지막,
서울여대에서 해직된 이우정 전 교수가
미리 준비한민주구국선언문을 낭독합니다.

“3.1 57돌을 맞으면서,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은
구국선열들의 피를 땅에 묻어버리는 죄가 되는 것 같아
우리의  뜻을 모아 민주구국선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자 한다.”

당시 유신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10명이 최종 서명합니다.

함석헌, 윤보선, 정일형, 김대중, 윤반웅,
안병무, 이문영, 이우정, 서남동, 문동환.
모두 당대의 내로라하는 명망가들입니다.

원래 이 선언문의 초안자는 문익환 목사였지만,
당시 공동성서 번역 작업을 하고 있어,
대신 동생 문동환 목사의 서명이 담깁니다.

2. 3 10관련자 발표

그리고 3 10, 검찰은 ‘3.1민주구국선언
일부 재야인사들의 정부 전복 선동사건으로 규정하고,
관련자 20명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입건했다고 발표합니다.

사건 다음날인 3 2일부터 당시 관련자들이 연행됐음에도,
언론은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고
검찰 발표가 있은 후에야 사건에 대해 전합니다.

당시 구속·입건자 명단이 실린
3 11일자 동아일보 7면 기사입니다.

3. 3 26 – 11 구속

그리고 불과, 2주 만에 검찰은 사건을 빠르게 종결합니다.

3 26일 발표된, 검찰의 수사 결과입니다.

관련자 20명 중 함세웅 신부, 문익환 목사, 김대중 전 대통령, 문동환 목사, 이문영 선생, 서남동 목사, 안병무 선생, 신현봉 신부,이해동 목사, 윤반웅 목사, 문정현 신부 등 11명은 구속되고,

정일형 전 의원, 함석헌 선생, 윤보선 전 대통령, 이태영 선생,
이우정 선생, 김승훈 신부, 장덕필 신부 등 7명은 불구속 기소,

김택암 신부, 안충석 신부는 기소유예 처분됩니다.

선언문 관련자는 10명이었지만,
당시 유신독재에 맞섰던 인사들까지
이 사건에 연루시킨 결과였습니다.

4. 5 4 공판

그리고 같은 해 5 4, 첫 공판이 열립니다.

하지만, 방청권을 제한하는 등 사실상 비공개였습니다.

이에, 구속자 가족들은 방청 제한 철회 성명을 제출합니다.

당시 제출된 서류입니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후 구속자 부인들은양심범가족협의회를 만들어,
공판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 시위를 벌입니다.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십자가에 박혔음을 상징하는 뜻으로,
검정 테이프로 십자가를 만들어 입에 붙인 모습입니다.

, 남편 수감번호가 새겨진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시위하기도 하고,
공개재판, 민주주의 만세등이 쓰인 부채를 만들기도 합니다.

일명빅토리숄, 알파벳브이자형의
보라색 목도리를 만드는 등
법정 밖에서길거리 투쟁을 주도합니다.

5. 8 28 – 1 선고/1977 3 22대법원 판결

같은해 8 28일 선고된 1심 판결입니다.

최대 징역 8년까지 중형이 선고됩니다.

이에, 피고인 전원은 항소하고 재판은 연말까지 이어집니다.

법정 투쟁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재판기록에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듬해 3 22, 최종 판결이 나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 전원의 상고를 기각하고, 형을 확정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는 그 이유 하나로 받은 형량입니다.

같은 날, 불구속된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함석헌 선생을 중심으로,
지학순 주교, 박형규 목사 등이민주구국헌장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2013 7 3, 서울고법은
‘3.1민주구국선언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립니다.

함석헌 선생은 당시 재판정에 베옷을 입고 나옵니다.

왜 베옷을 입었는지 묻는 판사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양심도, 법도 그리고 나라가 죽었는데 상복을 안 입을 수 있느냐.”

이처럼, 당시 재판정은
민주주의를 논하는 명망가들로 인해민주학교라 불립니다.

허울뿐인 민주주의로 인해,
다시금 베옷을 입고민주학교에 다니고 싶어지는 요즘,
1976 3 1 <3.1민주구국선언>의 마지막 말로 끝맺음합니다.

민주주의 만세…”

<그날들> 장부경입니다.

※ The아이엠피터는 매주 수목금 저녁에 공개됩니다.

* 수요일 – 아이엠피터 초대석 + 추적10분
* 목요일 – 김기자가간다+쿠포터+그날들
* 금요일 – 종합본

더 낮은 곳, 더 소외된 곳, 더 정치적인 곳을 찾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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