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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군 의료체계 보고 (1)] “너 꾀병이지?” 아프다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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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군 의료체계 보고 (1)] “너 꾀병이지?” 아프다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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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카카오 스토리펀딩에도 동시에 연재됩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8602)

‘쿵, 쿵, 쿵.’

초인종을 누르자 바닥을 울리는 발소리가 문 밖까지 들렸습니다. 한 발로 겅중겅중 뛰어나온 김민찬 씨(21)는 “더운 데 멀리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다”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방안에 들어서자 후끈한 공기가 훅 느껴졌습니다. 민찬 씨는 유난히 더웠던 2016년의 여름을 에어컨도 없는 원룸에서, 왼발에 수면 양말까지 신은 채 버티고 있었습니다.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 수면 양말 아래 숨겨진 민찬 씨의 병명입니다. 엄청난 통증이 이어지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이 희소 질환은 온도차에 무척 민감합니다. 찬 바람 한 가닥, 물 한방울에도 통증이 찾아옵니다. 환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민찬 씨의 경우 하루 종일 꼬집는 정도의 통증이 지속되고, 정신을 잃을 만큼 극심한 통증도 자주 찾아옵니다.

민찬 씨는 실신할 때를 대비해 지갑에 쪽지 한 장을 상비하고 다닙니다. 쪽지에는 “저는 CRPS 환자입니다. 적절한 병원으로 다려다 주세요”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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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찬 씨의 발목에 CRP라는 희귀병이 생긴 건 군 복무 중이었습니다. 지난 1월, 자대에서 훈련을 받던 도중 입은 부상이 악하된 겁니다. 부상으로 힘든 그를 더 괴롭게 한 건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민찬이가 위병소를 나가자마자 목발을 버리고 뛰어놀았다’ 이런 소문이 났더라고요.”

민찬 씨는 선·후임, 동기들과의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외, 대기 기간이 길어지자 꾀병이라는 주변의 눈총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단 의무대의 권유를 받아 지난 2월 16일, 군 고양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진단 결과 인대 파열. 깁스를 한 채 신병 위로 휴가를 다녀왔고, 복귀한 뒤에는 생활관에 머물렀습니다.

“통증이 계속 심했어요. 원래 아프다는 말을 잘 못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하소연할 수 없었어요. 하면 왕따가 되니까요. ‘징징댄다’ ;훈련 빼려고 저럴 줄 알았어’ 하는 식으로 눈치가 바로 와요. 그래서 청소는 다 했어요. 뒤꿈치가 쓸려서 화상을 입는 느낌이 나는데, 그거라도 안 하면 정말 왕따가 될까봐…쉬라고 하는 좋은 친구들도 많았는데 ‘언제 움직여?’ 이런 사람들도 있었어요.”

아프다는 그의 말을 진심으로 믿어주지 않은 건 비단 선·후임만이 아니었습니다. 간부들 역시 미온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얼른 나아서 체육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2016년 2월 29일 일기)는 그의 의지는 곧 꺾였고, 그 자리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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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표 씨(21)가 겪었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6월 입대한 인표 씨의 보직은 정비병. 대전종합군수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8월 초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배치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실시된 유격 훈련(2015년 9월 3일) 도중 그는 무릎에 통증을 느꼈습니다.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훈련은 계속됐습니다. ‘쪼그려 뛰기’ 자세 도중 “무릎에서 타이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대 야전 의무실에서 이틀을 지냈습니다. 국군 수도병원 야간 응급실로 후송된 건 부상을 입은지 이틀이 지난 뒤였습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 ‘단순 염좌’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낮에는 대대 의무실에서 지내고, 의무실이 닫는 야간에는 생활관에 머물렀습니다.

“정비병으로 보직을 부여받아서 부대에 간 상황에서 일을 못 하니까 선임들 눈초리가 딱, 안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동기 중에서도 한 명이 ‘꿀 빠니까(편하게 쉰다는 의미의 은어) 좋냐’는 말을 했대요. 내무반에 가는 게 너무 공포스러웠다고 했어요.”(홍인표 씨 어머니)

거동이 불편했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행정반에 통합 보관된 처방약을 받으러 가는 일이었습니다. 생활관이 있는 1층에서 행정반이 있는 3층까지 끼니 때마다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문제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통증이었습니다. 목발을 짚고 이동하던 중, 급자스럽게 통증이 유발되면 계단에서 넘어지거나 굴렀습니다. 그는 통증 때문에 약을 챙겨 먹지 못한 날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부상을 당한 날로부터 50일이 지난 뒤, 국군 수도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26일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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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만 겪은 특별한 경험이 아닙니다. ‘아프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고, 한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는 군대 내부 분위기는 병을 키우고, 군 의료 체계의 신뢰를 낮추는 주요 원인으로 매번 지적됩니다. 지난 2013년 실시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도 확인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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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에 응한 605명의 병사 가운데 30.5%, 265명이 진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입원 병사의 경우 이 비중이 54%로 과반을 차지했습니다.(입원 병사 총 313명 대상). 이는 실제 아프거나 진료가 필요할 때, 이런 뜻을 표현하기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프다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 역시 두 사람의 경험과 유사합니다. 설문 결과 “꾀병을 부린다는 선입견에 대한 우려”가 약 40%를 차지했습니다. “진료 후 부대 적응이 우려된다(훈련 유급, 기수 열외 문제 등)”는 응답 12.8%를 포함하면, 주변의 눈치 때문에 아프다는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절반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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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아프다는 말을 꺼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권위 조사에서 ‘선임이 아프다는 말을 가볍게 여긴다’라는 응답이 33%, ‘간부가 가볍게 여긴다’가 25.8%를 차지했습니다. 병사 2명 중 한 명이 선임 혹은 간부의 반응에 원인이 있다고 답변한 겁니다.

사실 국방부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프다는 말을 가장 하기 어려운 이등병을 대상으로 ‘이등병 건강 상담’을 지난 2011년 시범 도입했고, 2013년부터는 확대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방부가 나름의 해결 방안을 도입한 이후로 5년, 인권위의 조사에서 문제가 확인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프다’는 말을 하기 어렵고, 한다고 해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우리 군의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아 보입니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삶을 잃어야 군은 변할까요.

 

김지혜 기자 ilov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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