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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13화] 박정희 그리고 ‘긴조세대’ I. 민청학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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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고인이 된, 한국 민주화 운동사의 큰 별
박형규 목사입니다.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6차례나 투옥되며,
유신 독재에 맞섰던 ‘실천하는 신앙인’.

그리고 그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민청학련 사건’.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그날들>.

이번에는 긴급조치로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넋을 기리며,
당시의 대표적인 시국사건들에 집중합니다.

그 첫 번째로, 민청학련 사건입니다.

 

1. 1974년 4월 3일

1974년 4월 3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명의의
유인물이 배포되며,
전국 각 대학에서 유신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집니다.

하지만 시위는 계획대로 되지 않고, 소규모로 끝납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갑작스럽게 선포된 긴급조치 4호입니다.

이로써 학생들의 모든 집단행동을 금지합니다.

그리고 이는, 민청학련 사건의 근거가 됩니다.

 

2. 1974년 4월 25일 – 중앙정보부 체포

같은 달 25일, 중앙정보부는
긴급조치 4호와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1024명을 영장없이 체포합니다.

당시, 사건을 발표하고 있는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입니다.

“민청학련의 배후에 공산단체인 인혁당과 조총련계 일본 공산당,
국내 좌파 혁신계가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180명을 군법회의에 넘깁니다.

 

3. 1974년 5월 27일 – 검찰 발표

약 한 달 뒤, 검찰부는 수사결과를 발표합니다.

당시 ‘민청학련 사건 주요 피고인 공소사실 요지’라는 제목으로
두 면에 걸쳐, 피고인들의 위반 내용을 자세히 명시한
5월 27일자 경향신문입니다.

“정부를 전복하고 4단계 혁명을 통해
노동자와 농민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을 기도했다”는 혐의입니다.

그리고 배후조종 세력으로 ‘인민혁명당’을 지목합니다.

즉, 민청학련의 배후에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있으며,
이들이 인혁당을 재건해
민청학련의 국가 전복 활동을 지휘했다는 겁니다.

소위, ‘인혁당 재건위, 제2차 인혁당 사건’입니다.

이후, 민청학련 사건은 둘로 나눠 재판이 진행됩니다.
그 재판 결과는 어땠을까요?

 

4. 판결 – 1심, 2심

먼저, 1심 결과입니다.

같은 해 7월 11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판결입니다.

관련자 21명 중 7명 사형, 8명 무기징역,
나머지 6명에게는 징역 20년이 선고됩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13일 발표된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판결입니다.

관련자 32명 중 7명 사형, 7명 무기징역,
나머지 18명에게는 징역 15~20년이 선고됩니다.

검찰의 구형대로 선고 판결을 받은 ‘정찰제 판결’이었습니다.

이 당시, 변론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입니다.

“피고인석에서 그들과 같이 재판을 받고 싶은 심정”이라는 요지로 변론했다가
긴급조치 4호 위반과 법정모욕죄로 구속됩니다.

이후 비상고등군법회의 2심에서,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6명은
무기징역 이하로 감형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5년 2월 15일, 이들 대다수가
대통령특별조치에 의한 형집행정지로 석방됩니다.

하지만 여정남 씨와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은
제외된 채였습니다.

 

5. 1975년 4월 9일 – 사형 집행

같은 해 4월 8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며
최종적으로 사형이 확정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판결이 확정된 지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됩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고 서도원, 하재완, 김용원, 송상진, 도예종, 이수병, 우홍선 씨와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고 여정남 씨입니다.

당시 정권은 이들의 시신마저도 가족에게 인계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화장 처리합니다.

‘사법살인’으로 불린 이 날.

국제법학자회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합니다.

 

이후, 역사는 민청학련 사건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2002년 의문사위는 “정보부에 의한 조작사건”으로,
2005년 과거사위는 “정권 차원의 조작과 기획”으로…

그리고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합니다.

인혁당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꾸며진 허구조직이고,
당시 사건은 심한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임이 밝혀집니다.

모든 긴조세대를 애도합니다.
<그날들> 장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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