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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9화] 박정희 그리고 ‘유신체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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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정희 “월남패망”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1975년 4월 29일 발표한 ‘국가안보와 시국에 관한 특별 담화’입니다.

월남 패망의 원인으로 “국론분열”을 꼽으며,
국가안보를 내세워 국면 전환을 꾀합니다.

하지만, 당시는 국론이 분열된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유신독재 반대’로 국론이 통일된 시기였습니다.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그날들>.

이번에는 당시 발언의 배경이 된 ‘유신’,
그 시작부터 짚어 보고자 합니다.

 

2. 1972년 10월 17~18일

1972년 10월 17일 저녁,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갑작스럽게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1972년 10월 17일 19시를 기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 활동의 중지 등 현행 헌법의 일부 조항 효력을 정지시킨다.”

한 마디로 ‘헌정 중단’입니다.

게다가, 열흘 안에 새 헌법을 공고하는 비상조치를 단행해,
대학은 휴교에 들어가고, 언론·출판·방송은
사전에 검열을 받게 됩니다.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치체제를 개혁한다”고 선언한,
당시 박 전 대통령입니다.

새 헌법을 만들기 위해, ‘통일’을 명분으로 내세웁니다.

하지만, 당시는 헌정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국가가 위태로운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3. 1972년 10월 27일

그리고 열흘 뒤인 같은 달 27일, 헌법개정안을 공고합니다.

당시 문공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10.17선언을 ’10월 유신’으로
통일해서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이 때부터 공식적으로 ‘유신’으로 불리게 됩니다.

 

4. 1972년 11월 21일

다음 달인 11월 21일, 국민투표가 열립니다.

투표율 91.9%와 찬성율 91.5%로, 유신헌법이 확정됩니다.

국민투표가 이뤄지긴 했지만, 당시는 비상계엄 상황이었습니다.

90%가 넘는 수치를 통해,
이는 통과된 것이 아니라, 통과 당했음을 짐작게 합니다.

이로써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 국회해산권,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법관 임명권이 부여됩니다.

하지만 국회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어,
장기 집권의 토대가 마련됩니다.

 

5. 1972년 12월 15일

그리고 다음 달인 12월 15일, 대통령을 뽑는 권한을 갖는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초대 대의원의 선거가 치러집니다.

당시 전국 평균투표율은 70.3%로,
1630개 선거구에서 2359명을 선출합니다.

 

6. 1972년 12월 23일, 27일

같은 달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은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등록과정에서부터 정부의 통제 하에 있었던 대의원들로 치러진 선거,
이른바 일명 ‘체육관 선거’의 시작이었습니다.

단독출마한 박정희는 대의원 2359명 중 2357명의 지지를 받아,
임기 6년의 제8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지지를 얻지 못한 단 2표 역시, 반대표가 아닌 무효표로,
당시 대의원들이 거수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흘 뒤인 27일, 유신헌법이 공포됩니다.

당시 서울 장충 체육관에서 열린 제8대 대통령 취임식 모습입니다.

이로써 유신헌법이 공포되고 제4공화국이 출범합니다.

 

지난 6월 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은
내부의 분열과 무관심”이라며
“월남 패망”을 거론한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드 배치를 발표합니다.

이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성주군민들을 국가 분열 세력으로 매도하고,
“안보”를 위해 결단이 필요했다는 이유를 내세웁니다.

짚어보면, 사드 배치 발표 이후의 상황들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미리 단속하는 듯한 발언이었습니다.

국가 분열을 예견하면서도 강행해야만 했던 이유는
“안보”라고 합니다.

국가의 안보가 걸려 있어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할 문제를
지금 이 시점에 강행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갑작스럽게 유신이 선포된 1972년 10월 17일,
그 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들> 장부경입니다.

※ THE아이엠피터 40회 전체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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