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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7화] 박정희 그리고 ‘정수장학회’와 황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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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에서는 언론을 조작하는,
일명 정치판의 설계자, 이강희 논설주간이 나옵니다.

이처럼 일부 정치인들은 정권을 위해
언론을 이용하고 언론장악을 시도합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를 설계했다고 알려진 ‘황용주’와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입니다.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그날들>.
이번에는 ‘5.16장학회’가 왜 언론사 대주주가 됐는지
그 이면을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1. 김주열 열사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1면입니다.

당시, 부산일보는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가했다가 실종됐던
김주열 열사의 사진을 대서특필합니다.

최루탄이 오른쪽 눈에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모습입니다.

1면에 실린 이 사진이 전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면서,
4월 혁명의 도화선이 됩니다.

 

2. 부산문화방송 부정선거 생중계

1960년,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생중계한
부산문화방송 화면입니다.

당시, 부산문화방송은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벌어졌을 때,
중계차를 보내 ‘시위 상황’을 생중계합니다.

경찰이 중계를 막으려 방송국을 포위하자,
실제 중계차의 실황을 받아 방송을 전국으로 내보낸 곳은
부산일보의 김지태 사장실입니다.

이렇게 제대로 된 언론사 역할을 했던
김지태 소유의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

김지태는 왜 언론사 포기각서에 서명하고
당시 박정희 정권에 이 언론사들을 모두 넘겼던 것일까요?

박정희와 김지태, 그들의 관계를 살펴봐야겠습니다.

 

3. 세 사람의 관계

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는
당시 부산일보 주필이었던 ‘황용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박정희는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부산에 있었습니다.

그는 대구사범 동기동창이자 부산일보 주필이었던 황용주를 통해,
자연스레 부산일보사에 자주 출입하게 됩니다.

황용주와의 관계는 ‘5.16군사정변’ 다음날 실린,
부산일보의 사설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국적 군사혁명의 의의’라는 환영 사설이었습니다.

박정희는 황용주를 통해
당시 부산일보 사장이었던 김지태와도 친분을 맺게 됩니다.

이후 5.16군사정변으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김지태의 토지와 언론 3사 주식은
국가의 공식적 절차를 밟지 않고
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에 따라
재단법인 ‘5.16장학회’의 기본재산으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박정희 정권은 자진헌납처럼 문서를 위조하고
‘장학회’라는 형태로 언론사를 소유하게 됩니다.

김지태의 유족이나
당시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관계자들은
‘황용주’가 이를 설계했다고 증언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은
황용주의 이후 행보를 통해 확인됩니다.

 

4. 황용주

이후 황용주는 부산일보 사장을 지내고,
한국문화방송 사장에도 오릅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언론사의 소유가
‘5.16장학회’로 이전된 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잡지 <세대> 11월호에
‘강력한 통일정부에의 의지’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1964년 11월 11일 구속됩니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주장해,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언론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침해한 당시 박정희 정권.

공영방송 보도에 관여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돼,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현재의 박근혜 정권.

언론 장악 시도는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었습니다.

<그날들> 장부경입니다.

※ THE아이엠피터 38회 전체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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