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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5화] 박정희 그리고 ‘6.8 부정선거’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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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대통령 박정희의 취임을 알리는 뉴스입니다.

“전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아 다시 대통령에 취임했다”는 박 전 대통령.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대통령 취임날에도 ‘6.8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계속됩니다.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그날들>. 이번에는 ‘6.8부정선거’, 그 이후의 일들에 집중했습니다.

 

6월

선거 다음날인 1967년 6월 9일, 시민과 학생들의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곳곳에서 벌입니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은 ‘6.8선거’를 “사상 최악의 부정 선거”로 규정하고 국회 등원을 거부하며 “전면 무효화”, “전면 재선거”를 요구합니다.

‘6.8선거 무효화투쟁위 구성’이라는 제목의 6월 13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입니다.

신민당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6.8부정선거 무효화 투쟁위원회’를 조직합니다.

당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과 학생의 모습입니다.

이에 정부는 전국의 고교와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지만, 학생들의 시위는 계속됩니다.

그리고 며칠 뒤, 대통령 특별담화가 발표됩니다.

6월 16일자 매일경제 1면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6명의 공화당 당선자의 제명조치를 지시했다”는 내용이 실립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사과나 진상규명은 없었습니다.

야당과 국민들의 계속된 시위에 고육지책으로 나온 회유책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6월 21일, 학생대표들은 ‘부정부패일소 전학생투쟁위원회’를 만들고 ‘부정선거규탄 성토대회’를 개최합니다.

이에, 신직수 검찰총장은 6월 23일 “국회의원 부정선거를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힙니다.

당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신직수 검찰총장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꼬리자르기’에 지나지 않아 6월 내내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집니다.

 

7월

이처럼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7월1일 박정희 6대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신민당이 전면 재선거 실시를 주장하며 의원 등록을 계속 거부한 가운데, 공화당은 자신들이 제명한 무소속 의원까지 참석시켜 국회 개원식을 엽니다.

7월 3일, 서울 시내 14개 대학에서 1만 6천여 명이 참가하는 등 시위가 최고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날 휴교령으로 서울시내 고교가 무기한 휴교에 들어가고 다음날부터 각 대학이 조기방학을 해, 결국 시위는 중단됩니다.

7월 8일자 경향신문 1면입니다.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동백림 간첩단 사건’입니다.

서독이나 프랑스에서 유학했던 학계·문화계 인사, 언론인, 공무원 등 소위 당시 ‘엘리트’라 불리던 사람들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북의 지령에 따라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거점이라고 밝혀진 동독의 수도 ‘동베를린’을 한자로 음독한 ‘동백림’을 따서 이름 붙여진 ‘동백림 사건’.

이 사건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연루돼 지독한 고문을 받습니다.

2006년 1월 26일 과거사 진실위를 통해 “부정선거를 무마하기 위해 기획된 사건은 아니나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해 사건을 확대했다”는 결과가 드러납니다.

 

8월

8월 14일자 동아일보 1면입니다.

‘동백림 사건’으로 ‘부정선거 사건’이 가려지는 가운데, 신민당에서 ‘6.8부정선거 백서’를 발표합니다.

당시 신민당에서 발간한 ‘6.8부정선거 백서’입니다.

이를 계기로, 다시 대학에서 시위가 일어납니다.

8월 21일 서울대 문리대와 법대를 시작으로, 다음날에는 서울대 상대에서 시위가 벌어집니다.

 

9월

9월 11일 서울대 상대에서 다시 시위가 일어나고 시위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제적생이 나옵니다.

바로 당시 서울대 상대에 재학중이던 고 김근태 전 의원입니다.

9월 25일, 동아일보에 ‘공화당, 4 의원제명 결정’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립니다.

이처럼 4명의 공화당 의원이 제명된 데 이어, 10월 3일 전국구 의원 4명이 제명을 자청합니다.

당시 제명 의사를 밝히고 있는 이동원, 이병주, 이원엽, 김분준 공화당 의원입니다.

 

10월

그리고 10월 6일자 경향신문에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이상한 성격의 원내교섭단체가 개업했다”는 기사가 실립니다.

바로, 전날 원내교섭단체로 발족한 ‘10.5구락부’입니다.

첫 모임이 열린 당시 사진입니다.

이미 제명된 9명과 며칠 전 제명을 자처한 4명의 공화당 의원이 모인 무소속 원내 교섭 단체가 출범합니다.

신민당의 등원 거부로 국회가 공전되자, 공화당 단독 국회가 아닌 것처럼 해서 국회를 열려는 꼼수였습니다.

‘10.5구락부’는 이후 12명으로 조정되고, 68년 12월 25일 ‘정우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합니다.

 

11월

11월 6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삽니다.

여야 전권 대표가 모여 회의를 열고, 공식 협상을 시작합니다.

공화당과 신민당 대표가 당시 악수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보름간의 협상 끝에 11월 20일, 양당이 ‘합의의정서’에 서명합니다.

11월 29일 경향신문 1면입니다.

“신민당 의원들이 선거 후 처음으로 국회에 등원해, 의원선서를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로써 6개월간의 야당 의원 등원 거부와 부정선거 규탄 투쟁은 일단락됩니다.

 

“선거가 문제를 남기고 끝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국민들의 계속된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도, 당시 대통령은 그저 두루뭉술한 발언만을 했습니다.

국민들의 시위에도 성대하게 치러졌던 ‘6대 대통령 박정희’의 취임식.

당시 박 대통령의 취임사 중 일부로, 클로징을 갈음합니다.

<그날들> 장부경입니다.

※ THE아이엠피터 36회 전체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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