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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구 칼럼] 한국 정치 상황을 대통령 국회연설 박수 횟수로 설명하겠다고?

[정연구 칼럼] 한국 정치 상황을 대통령 국회연설 박수 횟수로 설명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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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에 대한 국내의 신문, 방송 보도를 살펴보면 ‘팩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당황스럽다.

팩 저널리즘이란 간단히 이야기하면 모든 언론사의 뉴스가 닮게 되는 현상을 문제로 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미국의 1972년 대선 때 모든 언론매체의 보도가 비슷한 현상에 주목해 이런 내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며 팩 저널리즘이 동원됐다. 이런 내용을 세상에 드러낸 대표적인 저서는 미국의 언론인 티머시 크로스(Timothy Crouse)가 쓴 《버스를 탄 소년들》(The Boys on the Bus)이다. 크로스는 이 책에서 주요 기사 아이템뿐만 아니라 그 아이템의 내용마저도 유사해지는 이유를 작은 매체의 큰 매체 모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후보의 유세를 따라다니는 버스를 함께 타고 다니는 기자단 중 뉴욕타임스와 같은 큰 매체에서 나온 유명한 기자의 견해나 방법, 방향을 나머지 기자들이 참조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혹시 자신이 생각한 내용이 엉뚱하지는 않을지, 오보는 아닌지, 중요 내용을 놓치지나 않는지와 같은 두려움을 작은 매체 기자들이 느끼게 되어 큰 매체 유명기자의 기사를 지속적으로 참조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크로스가 관찰한 사례에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정치부 기자들이 권력에 약한 모습을 집단적으로 보이고 있음도 드러났다.

대통령 연설 내용보다 ‘박수 횟수’?

이번 대통령 국회 개원 연설 보도도 대부분의 주요 매체들이 의원들의 박수 소리가 몇 번이었는지를 보도했다.

민언련의 모니터에 따르면 박수 소식을 가장 상세히 보도한 신문은 중앙일보였다. <유승민·조응천 일어나서 박수, 진영은 기립만> 보도를 통해 “박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동안 총 23번의 박수가 나왔다. 하지만 더민주 의원들은 대부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더민주 의원 중에선 김부겸(4선·대구 수성갑) 의원이 연설 도중 간간이 박수를 쳤다”,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이 입·퇴장할 때와 발언 도중에 박수를 보내는 의원과 지켜보는 의원 둘로 나뉘었다”며 각 당의 ‘박수 현황’을 세밀하게 보도했다.

방송 가운데서 박수 소식에 가장 집착한 매체는 종편방송 채널A였다. 다른 방송은 박수 소식과 함께 개원 연설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도 전했지만 채널A <종합뉴스>만은 이날 국회 분위기만을, 그것도 연예뉴스와 같이 가십성으로 다뤘다. 박수를 몇 번이나 쳤는지 누가 어떻게 쳤는지 외에도 대통령의 옷차림, 대통령을 맞이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꽃길’, 대통령과 악수한 의원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다.

중앙일보와 채널A가 유독 상세히 박수 소식을 전했지만 다른 많은 매체도 박수 소리는 빼놓지 않았다. “박 연설 중 박수 21차례 퇴장 때 의원 모두 기립”(한국일보), “박 대통령 연설 도중 주로 여당 의원들에 의해 20차례 박수가 나왔다. 야당 의원들도 박 대통령 본회의장 입·퇴장 시 모두 일어섰다”(경향신문), “여야 의원들로부터 총 21차례의 박수를 받았다”(한겨레)가 신문의 사례다. 통신사의 기사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여야 의원들은 착석한 상태에서 24차례 손뼉을 쳤다”(연합뉴스)

방송에서도 이런 내용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입장과 퇴장을 포함해 연설 도중 모두 22번의 박수가 나왔습니다. 여당과 국민의당, 무소속 유승민 의원도 박수를 쳤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동참하지 않아 박수 소리는 크지 않았습니다”(TV조선 <뉴스쇼판>), “오늘 대통령의 연설 중에도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약 20여 차례의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야당 의원들은 대체로 냉담한 반응이었습니다”(JTBC <뉴스현장>)

팩 저널리즘 환경에서 집단 최면에 빠진 기자들

사실 박수는 그 자체로 연설이나 사람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는 지수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큰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예의로 박수를 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이런 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개원연설과 관련하여 박수를 지수로 채택하여 연설이나 사람에 대한 호감 정도로 보도한 일은 이해하기 어렵다. 팩 저널리즘 환경에서 만들어진 집단 최면이 국회 출입 기자들에게 있다고 해야 할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볼 때 SBS가 메인뉴스에서 대통령 입장과 퇴장 시 여야 국회의원이 모두 일어선 것을 ‘예우’로 표현한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인다. 물론 같은 시간 국회개원을 다룬 다른 기사에서도 박수 관련 내용은 없었다. JTBC는 낮 뉴스인 <뉴스현장>에서는 박수 관련 표현을 전했지만 저녁종합뉴스인 <뉴스룸>에서는 여야의 반응을 아예 여야 대변인의 논평으로만 처리해 눈길을 끌었다.

※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에도 실렸습니다.
외부 기고의 글은 국민TV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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