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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3화] 노무현 그리고 ‘차떼기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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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백, 사과상자, 승합차, 탑차.

상자가 커지면서, 담을 수 있는 그 규모 역시 커졌습니다.

바로 ‘검은 돈’, ‘불법 자금’입니다.

이와 같은 정경유착의 고리인 ‘불법 대선자금’을 밝힌 최초의 수사가 있습니다.

여야 대선후보 정치자금의 전모가 밝혀졌던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입니다.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그날들>.

이번에는 2002년 대선 당시, ‘얼마’만큼의 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에 집중했습니다.

 

1. 사건 전개

대선 자금 수사의 단초는 ‘SK그룹의 분식회계 수사’였습니다.

2003년 2월, SK그룹 계열사의 부당 거래로 검찰조사를 받던 손길승 회장이 “비자금 일부를 여야 대선자금으로 건넸다”고 진술합니다.

이에 대검 중수부가 내사를 벌입니다.

언론을 통해 이 내사가 공개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같은해 11월 2일, 검찰에 전면적인 대선자금 수사를 지시합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됩니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입니다.

현 정권에서 국무총리 후보로 낙점됐다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사퇴했고,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로 나와, 낙마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성역없는 수사를 해 ‘국민 검사’, ‘원칙주의자’로 불리게 됩니다.

 

2. 차떼기당

대검 중수부는 11월 4일,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을 구성합니다.

SK, 삼성, 현대차, LG, 롯데 등 주요 기업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여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차떼기’의 전모가 드러납니다.

LG그룹은 대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 측에 현금을 실은 ‘2.5톤 탑차’를 이용해, 불법 자금을 전달합니다.

2.5톤 탑차가 필요할 정도의 금액이었습니다.

다른 대기업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자금을 전달합니다.

이른바 ‘차떼기’, 차 전체를 넘기는 방식이었습니다.

‘SK 지하주차장’, LG ‘2.5톤 트럭 차떼기’, 현대자동차 ‘스타렉스 차떼기’, 삼성 ‘월간지떼기’ 등 당시 건네진 금액은 ‘정경유착’의 단면을 드러내기에 충분했습니다.

 

3. 노 대통령 발언

당시 야당들은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을 내세우며, ‘물타기 공세’를 펼칩니다.

이에, 노 대통령은 같은해 12월 14일, 4당 대표와의 회담자리에서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틀 뒤인 16일 특별기자회견 자리에 선 노 대통령의 모습입니다.

“한나라당의 무책임한 의혹 부풀리기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밝힙니다.

결국 여야 모두, 대선자금을 불법으로 모금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 액수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습니다.

 

4. 중간 발표, 한나라당 천막 당사

이듬해인 2004년 3월 8일,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됩니다.

‘차떼기당’으로 불리며 전락한 한나라당. 이에,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천막을 쳐서라도 당사를 옮기겠다”고 밝히며, 24일 천막으로 당사를 옮깁니다.

당시 현판을 내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기존 여의도 당사에서 나와, 여의도 공원 인근에 컨테이너와 천막으로 꾸민 ‘천막당사’ 생활을 시작합니다.

 

5. 수사결과 최종발표

같은 해 5월 21일 발표된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입니다.

한나라당 이 후보 캠프는 삼성 340억원, LG 150억원, SK 100억원, 현대차 109억원 등 총 823억여원을, 민주당 노 후보 캠프는 삼성 30억원, SK 10억원 등 총 113억여원의 불법자금을 받았습니다.

대기업 총수들과 여야 정치인 40여명도 기소됩니다.

당시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3인방, 김영일 사무총장, 최돈웅 재정위원장, 서정우 법률특보 등이 실형을 선고받습니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실세였던 안희정 현 충남지사,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이 구속됩니다.

이처럼 ‘제 살 깎아 먹기’를 하면서도 감행한 고 노 전 대통령의 ‘정치 개혁’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차입니다. 10대 1이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그 차이가 가벼운 것이 아니고 그냥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피나는 노력의 결괍니다. 그것도 한 평생 정치를 하면서 이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 온 결과가 10대 1입니다.”

2004년 3월 11일, ‘중간수사 발표’ 이후 있었던 기자회견에서의 고 노 전 대통령 발언입니다.

과연, 그 차이의 ‘간극’은 줄었을까요?

당시 한나라당 이 후보의 김기춘 특보단장과 이병기 정치특보. 공교롭게도 ‘차떼기당’의 주역들은, 현 정권에서 모두 비서실장을 지냈습니다.

<그날들> 장부경입니다.

※ THE아이엠피터 33회 전체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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