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전체 기사 [김종철 칼럼] 박지원이 대통령 한 번 해보겠다고?
[김종철 칼럼] 박지원이 대통령 한 번 해보겠다고?

[김종철 칼럼] 박지원이 대통령 한 번 해보겠다고?

0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현안 관련 면담을 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의 오른쪽에 박근혜 대통령의 축하난이 놓여 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가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 유지 결정에 반발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에 대한 국회 차원의 해임촉구결의안 제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16.5.16/뉴스1 (서울=뉴스1) 손형주 기자 / handbrother@news1.kr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현안 관련 면담을 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의 오른쪽에 박근혜 대통령의 축하난이 놓여 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가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 유지 결정에 반발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에 대한 국회 차원의 해임촉구결의안 제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16.5.16/뉴스1
(서울=뉴스1) 손형주 기자 / handbrother@news1.kr

정치를 ‘3류 코미디’로 만들 작정인가

국민의당 원내대표 박지원이 지난 11일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그는 불교방송 <고성국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 도중 한 청취자가 문자를 통해 “직접 대통령을 한 번 해보세요”라고 권유하자 “굉장히 기분 좋은 소리네요”라고 응답했다. 진행자가 “그럼 국민의당에 이제 대선주자가 여러 명 생겼네요”라고 말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안철수 대표도 그런 말씀을 했잖나. 당권도 자기는 함께하지 않겠다. 문재인 대표는 꿩도 먹고 알도 먹고 국물도 먹다가 당이 분열되어 버렸지 않았나? 얼마나 좋나? 그런데 안철수 대표께서도 손학규 등 모든 사람이 우리 국민의당에 들어와서 대권 후보에 강한 경선을 하자,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더민주는 문재인 전 대표로 후보가 확정된 상태로 봐야 되지만 우리 국민의당에는 후보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강한 경선을 하기 때문에 저라고 못 들어갈 이유가 없다.”

진행자가 “오늘 박지원 대선 출마 선언한 날, 이렇게 신문에 제목 나도 괜찮냐”라고 묻자 박지원은 “아주 좋겠다”라고 단정적으로 대답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치인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출마 의사를 엄숙히 발표하는 모습은 많이 보았지만 박지원처럼 어느 날 갑자기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즉흥적으로 ‘중대 발표’를 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박지원이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노회한 정치인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그를 ‘대통령 감’으로 여기고 있다는 근거는 이제까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는 어떤 경력과 장점을 바탕으로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설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

박지원은 ‘체육관 거수기 선거’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1981년 1월 말 미국을 방문했을 때 뉴욕한인회 회장으로서 ‘전두환 대통령 각하 환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그는 1월 30일 교민단체 간부들과 함께 존 F. 케네디 공항에 나가 전두환을 열렬히 영접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 당시 총칼로 민중을 학살한 원흉이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알현’해서 ‘한국의 합법적 대통령’임을 ‘인증’받는 방미행사를 계기로 박지원이 뉴욕 한인사회 대표로서 환영에 앞장선 것이었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조작한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대중이 1982년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어 레이건 정권의 암묵적 ‘승인’에 따라 미국으로 망명하자 가발사업으로 큰 재산을 모아놓고 있던 박지원은 그의 ‘충실한 후원자’로 변신했다. 전두환 ‘모시기’에서 김대중 ‘섬기기’로 변신한 것이다. 박지원은 1984년 김대중이 미국 워싱턴에서 설립한 인권문제연구소를 지원하면서 상당한 액수의 생활비도 댄 것으로 알려졌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김대중이 사면·복권되자 박지원은 미국 영주권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그 이후 그의 경력은 화려하기 짝이 없다. 1992년에는 민주당 전국구 공천을 받아 14대 국회의원이 되고, 1998년에는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 공보수석, 1999년에는 문화공보부 장관, 2002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승승장구’ 했다. 그는 김대중이 대통령직을 떠난 뒤에도 이른바 ‘동교동계’ 가운데서도 가장 신임을 받았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성실함과 친화력이 뒷받침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지원이 국가와 민족을 이끌어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검증은 전혀 이루어진 적이 없다. 요즈음 김대중의 3남 김홍걸이 그의 행태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보라. 그런데 박지원은 마침내 ‘대선 후보 경쟁’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정치를 ‘3류 코미디’로 만들겠다는 것 아니면 지금 박근혜 정권의 악정과 실정 때문에 절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는 국민들에게 한 순간만이라도 웃음을 안겨주겠다는 뜻일까? 그가 입에 달고 사는 ‘김대중’이 지하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는지, ‘호남’이 ‘박지원 대선 출마 환영’의 깃발을 들는지 자못 궁금하다.

※ 이 글은 자유언론실천재단에도 실렸습니다.
외부 기고의 글은 국민TV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Print Friendly

LEAVE YOUR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